광고

[사설]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다는 것

농업은 천하 근본의 자리에서 천덕꾸러기의 신세로 내려앉게 되었다

강정훈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19/11/07 [16:12]

[사설]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다는 것

농업은 천하 근본의 자리에서 천덕꾸러기의 신세로 내려앉게 되었다

강정훈 논설위원 | 입력 : 2019/11/07 [16:12]

▲ 강정훈 논설위원/철학박사 

지난달 25일 정부는 세계무역기구 내에서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미래에 WTO협상이 전개되는 경우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과거를 살피면 1995년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면서 개발도상국임을 주장했지만 이듬해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는 농업과 기후분야만을 남기고 개도국 특혜를 포기한 역사가 있다. 이를 통해 농업 분야는 20년 넘게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았고 나름의 방어막 역할을 해왔다. 바야흐로 2019년 대한민국은 개발도상국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섣부르게 생각하면 자축할 일이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이 결정은 우선 정부 스스로의 판단이라기보다는 지난 7월 트럼프로 상징되는 미국의 횡포와 압력에 따른 반강제의 성격을 가진다. 미국이 제시한 개도국 불인정의 4가지 조건은 OECD가입국, G20회원국, 세계은행이 분류한 고소득국가, 세계 상품무역 비중이 0.5% 이상인 국가 등이다. 우리나라는 4가지 모두 해당한다. 우리보다 나은 바 없는 브라질이나 대만 등의 나라에서도 이미 포기를 선언한 상황이니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미국과의 자동차 관세, 방위비 협상 등의 논의와 관련해서 빌미를 잡히지 않으려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농업분야에 피해가 생길 가능성 또한 불가피하다. 그러다보니 농업 관련한 각종 단체와 지역에서 즉각 저항과 반발이 일어나 번지는 중이다. 생존을 위협하는 심각한 위기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 또한 타당한 판단이고 당연한 반응이다. 우리 사회 전체로 보면 딜레마의 상황에서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한 형국이다. 그렇지만 위기마다 소는 언제나 그 소이고 희생의 대상 또한 늘 동일한 약자라는 문제가 남는다.

 

농업분야가 내몰리는 처지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산업화란 애초부터 농업을 배제하면서 진행되는 현상이었기에 우리 사회 또한 비슷한 경로로 진행했다. 이촌향도(移村向都)라는 단어는 그런 사회상의 표현이다. 그러면서 차츰 농업은 천하 근본의 자리에서 천덕꾸러기의 신세로 내려앉게 되었다. 중장년 이상의 사람들에겐 대체로 모순되는 정서가 존재한다. 벗어나고 싶은 공간인 동시에 향수의 공간으로 소환되는 풍경이 바로 농촌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발생한 부채의식은 선심성 발언과 정책으로 나아가는 관행을 이루는 토양이 되었다.

 

이런 관행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사전에 이해를 구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정부차원의 노력은 여전히 부족하였다. 다시 선심성 발언과 무마용 정책의 나열이 반복구조화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악순환을 끊으려면 근본에서 돌이켜볼 일이다.

 

우리사회는 민주주의를 운영한다. 이 민주주의는 대의제의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기에 국회가 민의의 전당이 된다. 이런 국회가 오늘날 조롱의 대상이 되는 까닭은 대표성을 상실한 탓이다. 사회 전체의 여러 집단과 계층들의 이해를 적절히 대표하는 구성이 이루어져야 바람직하지만 현재 우리 국회는 쏠림이 지나치게 크다. 시장과 기득권의 목소리는 과잉 그 이상인 반면 농업의 편을 대표하는 목소리는 너무나 과소하다.

 

선거에서 표를 구하는 시기일 때만 동정과 선심의 대상으로 농업이 거론된다면 구태와 관행은 반복을 피하기 어려운 수렁이 될 것이다. 그러니 새삼 선거가 중요하다. 선거가 최선은 아니지만 현실의 대안은 거의 선거뿐이다. 선거는 우리사회의 명운을 가르는 중대한 사건이 된다. 선거의 결과로 나타나는 정치현상은 나와 무관한 딴 세계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부디 내년에 치를 선거가 대표성을 확보해가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