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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뒤집기에 성공한 직파?

강정훈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19/09/10 [18:02]

[사설] 뒤집기에 성공한 직파?

강정훈 논설위원 | 입력 : 2019/09/10 [18:02]

▲강정훈 논설위원/철학박사  

큰바람이 할퀴고 지나간 흔적들은 곳곳에 생채기를 내었다. 게다가 인두겁을 쓴 하이에나들이 벌이는 소란과 악취들이 도처에 만연하니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고 말 그대로 심난한 시절이다. 한편 문외한의 처지에서 농업에 관한 문자를 디밀어야 하는 속내는 늘 답답하고 민망하다.

 

이런저런 걱정에 본지의 화면들을 둘러보다 최근기사의 한 문장에 눈길이 잡혔다. ‘담수직파는 이앙재배보다 노동력은 12.4%, 생산비는 6% 줄일 수 있는 재배법이다.’알고 있는 상식과 다른 진술을 발견한 것이다. 직파법(直播法)에서 이앙법(移秧法)으로 전환하면서 농업생산량이 증대되었다는 사실을 전해주던 역사시간의 아련한 기억과는 결이 사뭇 다른 얘기여서 조금은 당혹스럽기도 하였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한반도는 오랫동안 벼농사가 중심이었다. 조선조 역시 벼농사가 가장 중요한 경제활동이었다. 하지만 두 차례의 전쟁을 치른 후의 황폐함은 새로운 접근을 요구했다. 이때 새로 적용된 기술이 이앙법이다. 그전까지는 논에 씨앗을 뿌리는 직파법이 보통의 농사방식이었다. 조선조 후기에 들어서면 모판에서 미리 싹을 길렀다가 나중에 이를 논에 옮겨 심는 방법 즉 이앙법이 사용되었다. 이앙법과 관련한 기술은 이미 그전에 확보된 상태였지만 그제서야 비로소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대체로 신기술이 적용되면 경제성 향상이라는 결과를 낳기 마련이다. 이앙법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높아지면서 효율성이 증대되었다. 나아가 한 사람이 경작할 수 있는 면적이 대폭 확대되었다. 하지만 연쇄작용으로 발생한 사회변동을 짐작해보면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다. 벼농사에 필요한 노동력이 현저하게 줄어들면서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이 수없이 생겨났다.

 

어떤 이는 이전에 10명이 필요했던 일이 이앙법 적용 이후로 3명이면 충분하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정확히 헤아리기는 어렵지만 일손이 엄청나게 줄어든 것만은 분명하다. 이로 인해 광작(廣作)이 가능해지고 빈익빈부익부의 현상이 가속화 되면서 지주와 소작의 행태가 일반화되는 상황으로 나아갔다. 한편 삶의 터전에서 내몰린 수많은 사람들은 정처 없이 떠돌이가 되었다. 이들을 유민(流民)이라고 하는데 오늘날로 표현하면 대규모 실업자 무리가 거리마다 넘쳐나게 된 것이다. 조선은 이러한 변동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으니 나라를 지속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이제 다시 직파가 이앙재배보다 경제성 높은 기술이 되는 시절이 되었으니 새삼 세상의 이치는 변하고 또 변하는 모양이다. 아무쪼록 과거를 교훈삼아 사람이 쫓겨나고 내몰리는 현상으로 나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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