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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說] 과학, 기술을 지배하다

강정훈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19/07/03 [08:05]

[社說] 과학, 기술을 지배하다

강정훈 논설위원 | 입력 : 2019/07/03 [08:05]

▲ 강정훈 논설위원/철학박사  

‘과학기술’이라는 단어의 사용은 매우 자연스럽다. ‘과학’과 ‘기술’이 합쳐지면서 거의 하나의 단어로 인식되기도 한다. 물론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과학’과 ‘기술’은 연원도 다르고 의미도 다르다. 기원은 단연 ‘기술’이 앞선다. 아마도 인류사회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사용되었다고 보아야 타당하다. 반복된 훈련과 습관을 통해 고도의 경지에 오른 행위나 상태를 지칭하는 말이 ‘기술’이다. 요즘 같으면 방송에서 ‘달인’이라는 칭호를 받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경지가 대체로 ‘기술’에 해당한다. 따라서 ‘기술’은 ‘예술’과 같은 의미이기도 하였다.

 

이에 비해 ‘과학’은 그 내력이 고작 수백 년이다. 그렇지만 ‘과학’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자 사물을 조작하는 원리에 해당한다. ‘과학’은 합리성을 근간으로 삼기에 철저하게 근대의 산물이다. 아니 근대의 동력원이다. 이런 까닭에 ‘과학’이 후발주자이긴 하지만 현재 그의 위상은 세상의 어떤 종교보다도 높고 위대하다. 근대가 이루어낸 성취의 일단을 잠깐 살펴보기만 하여도 이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이런 과정의 일환에서 ‘과학’과 ‘기술’이 융합하는 장면이 연출된 바 있다. 형태는 ‘기술’이 ‘과학’에 종속되는 모양새였고 이는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애초에 동등한 결합일 가능성은 없었다.

 

근대는 이전까지 인류가 마련한 모든 부문에 대해 새로운 기준으로 재구성을 시도하였다. 그 기준은 당연히 ‘과학’이다. 그 연장에서 특별한 개인들의 놀라운 성취에 해당했던 ‘기술’은 손쉽게 ‘과학’에 포획되었다. 그 결과 인류의 문명수준은 매일 최고점을 경신하는 중이다. 그 힘과 속도가 너무나 대단해서 미래의 수준은 더욱 예견하기 어렵다. 지난 달 19일에서 22일까지 양재동 aT센터에서는 농업기술박람회가 열렸다. ‘농업기술 100년의 미래를 열다’라는 슬로건에 부합하려는 다양한 노력들이 일군 기획물이었다. 그래서인지 여러모로 흥미로운 소재와 전시들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기술’을 표방하긴 했지만 실제 내용은 ‘과학’이 선도하고 제시하는 ‘기술’이라는 점은 명백했다. 그렇다고 문제일 것은 없지만 잠시 사족을 달아본다.

 

‘과학’은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일은 잘 없다. 그러니 과학의 성취에 대한 존중과는 별개로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특히 자본주의에 복종하는 과학의 행태에 대해서는 강한 의심을 품어야 마땅하다. 주로 이윤의 창출에만 골몰하는 자본주의는 ‘과학’을 그의 하수인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이라는 수식어가 ‘과학’에 따라 붙는 현상이 특히 잘 드러나기도 한다. 따라서 ‘과학’은 의도적으로 인류전체와 생태계에 이바지하려는 주관적 방향성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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