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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규인 수필] 막걸리

연규인 운영위원 | 기사입력 2019/07/03 [07:45]

[연규인 수필] 막걸리

연규인 운영위원 | 입력 : 2019/07/03 [07:45]

▲ 연규인 운영위원

어제는 고양시 지축역 주변 단지 현장점검을 마치고 날도 더워 북한산 자락 계곡에 위치한 오리백숙 집으로 갔다. 올해 처음으로 흐르는 물가에 앉아 식사를 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시원한 막걸리도 한 잔씩 들이키며 갈증을 해소했다. 

 

나는 술중에서도 막걸리를 좋아하는 편이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배경에는 어릴 때부터 이미 맛에 익숙하여 그런 것 같다. 어릴 때 집안의 제사를 지내고 나면 주법도 어른들 앞에서 배워야 한다며 으레 음복(飮福)이라고 한 잔씩 주셔서 마셨고, 또 초등학교 시절에 방학이 되면 시골인 경기도 광주의 외가 집에 놀려 가면 외할아버지께서 막걸리를 좋아하셨다. 그 당시야 시골에 술이라곤 막걸리가 전부였겠지만 외할아버지가 드실 술이 떨어지면 술을 사려 큰 양은주전자를 들고 약 오리쯤 떨어진 막걸리 양조장까지 가서 사왔다. 

 

나는 이 심부름을 가끔씩 하였고 어린 나이에 큰 양은주전자에 가득 채워진 막걸리가 무거워 낑낑거리며 몇 번이고 쉬면서 들고 왔다. 들고 오면서 막걸리의 달콤한 맛에 이끌러 주전자 꼭지에 입을 대고 마시면서 오다보면 가득 채웠던 막걸리가 눈에 띄게 줄어들어 있었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줄어든 막걸리의 양만큼 물로 채워 양을 맞춰서 외할아버님에게 건네 드렸다. 외할아버님은 그러한 사실을 모르시고 막걸리를 맛보시고는 양조장에서 막걸리에 물을 많이 타서 속여 팔았다고 “이런 고약한 놈들”하시면서 드셨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행복감에 감싸여 마냥 얼굴에 미소가 생기며 나를 무척이나 아껴주셨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그리고 아늑한 시골동네가 떠오른다. 

 

그 당시에는 가끔씩 양조장에서 물도 타서 파는 시절이었고 또 쌀이 귀하고 귀한 시절이라서 쌀의 소비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하여 개인 집에서 술을 빚는 것을 단속하였던 시절이다. 그래도 집집마다 몰래 밀주가 성행하여 가끔씩 동네 전체를 단속하여 이때 단속에 걸리면 벌금도 크게 내던 시절이었다. 나중에 커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밀주 단속은 그 동네의 술 전체 소비량이 떨어지면 양조장에서 신고하여 단속을 하였다는 것이다. 지금은 쌀이 남아돌아 소비를 위하여 정부에서 여러 정책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나의 경우 막걸리 맛의 첫 번째 으뜸은 등산가기 전날 냉동실에 얼려놓았다가 아침에 신문지로 돌돌 말아 배낭 속에 넣어가지고 다니다 더운 날 정상에서 산 아래 풍경을 안주삼아 정상 주를 마시는 그 맛이 천하제일이며, 두 번째는 힘든 일을 하다가 지치고 배고픔을 느낄 때 마시는 맛도 일품이다. 또 비 오는 날 출출한 저녁 시간에 빈대떡에 막걸리 한 잔도 빼놓을 수 없고, 그리고 왜구를 피하다 개발한 음식이라는 ‘홍탁삼합’은 톡 쏘는 강렬한 맛의 별미를 퇴근길에 한 잔 걸치면 직장생활의 고단함도 씻겨 내린다. 

 

이 ‘홍탁삼합’은 나주시에서 펴낸 ‘나주 향토음식을 찾아서’에 의하면 흑산도를 비롯한 여러 섬들이 현재의 나주인 나주목 관할이었는데 이곳에 살던 어민들이 조정의 정책에 따라 섬을 비우고 육지로 들어와 살게 되면서 평소에 먹던 홍어를 함께 가져오는데 당시 흑산도에서 영산포까지는 뱃길로 4, 5일이 걸리는 거리여서 홍어가 자연스럽게 삭혀졌고 이렇게 삭은 홍어에 입맛이 길들여지면서 별미 되어 여기서 홍어와 돼지고기 수육, 묵은 김치를 함께 먹는 삼합이 발전했다고 한다. 그래서 ‘홍탁삼합’으로 먹은 날에 버스를 타거나 전철을 탈 경우 옆 사람에게 고약한 냄새로 인한 불편함으로 미안하여 집에서 먼 곳에서는 마시기가 꺼려지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나이가 들수록 집에서 즐기는 술은 다른 술보다는 역시 막걸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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